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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에 되새겨본 부끄러운 우리글과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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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동창회1 댓글 0건 조회 2,163회 작성일 21-10-08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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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남불' '갑질' '과로사' '꼰대'…세계통용어가 된 우리사회 민낯
적대세력 조롱 정치권 비속어 '내로남불', 뉴욕타임스·BBC가 그대로 인용
부정적 단어·신조어 사용 일상화, 외신에 자주 언급되며 국제적 망신살까지
이민 붐 타고 알려지며 인기 끈 불고기·김치, 세계공용어로 정착된 韓음식
K팝 열풍, 지구촌 젊은층 우리 노랫말 따라 부르며 신드롬 '한글 영향력 확대'


10월9일은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575돌을 맞이하는 한글날! 마침 주말에다 대체 공휴일이 겹쳐 하루 더 쉬게 되었다는 즐거움이 앞서지만 이럴 때 한글날 단 하루만이라도 아름다운 우리말, 고운 말의 깊은 뜻을 한 번 되새겨 봄이 어떨까? 우리 생활 주변에 격이 낮고 속된 이른바 K비속어(卑俗語)가 살벌할 정도로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용어가 되다시피한 '내로남불'이 대표적인 비속어! 정치가 급속히 집단주의로 흐르면서 내로남불이란 용어는 이미 온라인 국어사전에 올라 있고 해외에서도 통용어가 돼 세계인의 눈과 귀를 파고들었다고 한다. 조만간 웹스터 영어사전에도 오를 전망이다. 내로남불이란 한마디로 겉 다르고 속 다른 표리부동을 가리키는 듣기 거북한 비속어다. 하지만 마치 촌철살인의 사자성어처럼 상대방을 꼬집는 수식어로 남용되고 있다.

특히 정치권에서 내 편, 네 편 갈라 우리 편만 무조건 감싸고 상대편은 적대 세력으로 몰아 헐뜯고 사생결단하는 전근대적 권력 행태로 남용되는 용어가 내로남불이다. 여·야를 불문하고 일상용어처럼 사용해온 내로남불의 원래 뜻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한글, 영어, 한문의 합성어로 애초 정치권의 유머러스한 은어(隱語)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런 은어가 상대를 공격하거나 방어할 때마다 으레 자신만 옳다고 주장하며 밀어붙이는 정치적 수식어로 변질된 것이 작금의 내로남불이다. 어원은 역시 정치권. 1990년대 중반 여·야 협상이 결렬되자 여당 대변인이 무조건 반대만 하는 야당을 꼬집어 내로남불이라고 한마디 툭, 던진 것이 매스컴을 타며 유행어가 되었다고 한다. 하여 내로남불은 한때 익살스러운 촌철살인의 멘트가 되었지만 지금은 그런 유머와 위트가 사라지고 권력 남용과 전횡의 상징어로 변질했다.

이념 정치 탓인가? 정치적 이해타산 때문에 국가의 미래를 내다보기는커녕 다수의 힘만 믿고 무조건 밀어붙이기만 하는 행태가 내로남불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치권의 일상용어가 되다시피한 내로남불은 신물이 날 정도로 실패만 거듭하는 정부 정책을 비판할 때마다 국민의 입에도 오르내리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 여당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내로남불로 밀어붙이기만 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든다"라는 민주화 세력의 선민의식 때문인가? 국민의 존재는 아예 안중에도 없다.

대통령이 내정한 장관급 인사청문회는 후보자가 법률적이나 도덕적으로 흠결이 많아도 무조건 다수당의 힘으로 통과시키기 마련이다. 집권 세력의 확신에 찬 내로남불이다. 대통령이 집권 내내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 인사청문회를 무시하고 내로남불로 임명한 장관급 인사가 자그마치 33명이나 된다. 이명박·박근혜정부를 합친 숫자보다 훨씬 많다. 때문에 통과 의례에 불과한 인사청문회를 차라리 없애버리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장관 임명을 강행하면서 "인사청문회 때 욕 많이 먹은 사람일수록 일을 더 잘한다"라고 자화자찬했다. 못 말리는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인사청문회가 필요 없는 차관급 이하 고위공직자 인사는 아예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집권 여당의 내로남불 행태는 대통령보다 오히려 한술 더 떴다. 권력형 성범죄의 여파로 치러진 서울·부산시장 재보궐 선거 때는 당헌·당규까지 고쳐 후보를 내고 온갖 감언이설과 흑색선전으로 유권자들을 유혹했다. 도무지 부끄러운 줄 몰랐다.

그러다가 분노한 민심이반으로 참패를 당하자 "민심의 죽비를 맞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며 "다시는 내로남불하지 않겠다"라고 대국민 사과문까지 발표했다. 그러나 눈감고 아웅 하듯 그때뿐이었다. 정신 차리기는커녕 다수당의 힘만 믿고 여전히 내로남불로 치닫고 있다. 역시 국민을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로 취급하는 모양이다. 대통령의 임기 말이 다가와도 집권 세력의 내로남불은 계속 폭주하고 있다. 좀체 뒤돌아볼 줄 모르고 자신들만이 오류가 없는 '민주화 세력'이라는 자만심 때문이리라.

이런 행태가 마침내 외신을 타고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했다. 4·7 재보선 직후 미국 뉴욕타임스와 영국 BBC 방송 등 주요 외신이 집권 여당의 재보선 참패를 전하면서 원인을 '이중잣대(double standard)'로 번역하기보다 '내로남불(naeronambul)'이라는 우리말 표기를 그대로 인용했다. 재보선 기간 중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여당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내로남불 용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시켰으나 외신은 그대로 옮겨 쓴 것이다. 상대방을 적대 세력으로 몰아 조롱하는 우리 정치권의 비속어가 외신을 타면서 하루아침에 세계 공용어가 된 이유다.

하기야 순수한 우리말의 세계 공용어도 많다. 1970년대 이민 붐을 타고 미국으로 건너가 정착한 한국 교포들이 음식점을 열면서 알려지게 된 불고기(bulgogi)와 김치(kimchi)는 이미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낯설지 않은 이른바 K푸드의 상징어가 되었다. 이후 K팝이 한류 붐을 일으켜 '오빠(oppa)'와 '언니(unnie)' '강남스타일(gangnam style)'이 유명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BTS(방탄소년단)와 블랙핑크가 세계 팝계를 석권하자 외국 팬들은 한글 노랫말을 알파벳으로 외우며 따라 부르게 되었다. K팝의 한글 노랫말을 가리켜 훈민정음과 합성한 '돌민정음'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부정적인 비속어 사용이 거의 일상화되고 자주 외신을 타면서 국제적으로 망신살만 뻗치고 있다. 개인의 인격을 모독하며 윽박지르는 갑질(gapjil)이란 용어도 여과 없이 외신을 탔다.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했다"라는 말을 굳이 '갑질'이란 한국어 표기로 보도한 것이다. 영국 BBC 방송이 지난해 한국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 소식을 전하면서 사인(死因)을 한글 발음 '과로사(kwarosa)'로 보도한 적도 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연합 시청자들은 대부분 영어(death from over work)로 풀어쓰면 쉽게 이해하겠지만 한국어 발음을 알파벳으로 옮긴 '과로사'를 과연 몇 사람이나 이해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의식적으로 한국어를 비하하고 조롱하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는지도 모른다. 국내에서 흔히 젊은이의 일에 참견하는 어르신을 비꼬는 꼰대(kkondae)란 말도 이미 세계어가 되었다. 영어권 국가에서 연세 높은 어르신을 대접해 부르는 'old man'이나 'senior citizen'이 마침내 세계적인 대명사 'kkondae'가 된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모두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강자에게 비굴할 정도로 약하고 약자에게 유달리 강한 정치·사회적 속성 때문이다. 일종의 열등의식에서 벗어나려는 본능적인 자기 만족 행태인가. 일부 국회의원들은 애먼 증인들을 국회에 불러놓고 유별나게 심한 갑질로 권력을 과시하려 든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갑질 문화를 소개하는 외신에도 '갑질'이란 용어를 그대로 인용한다고 했다. 우리 정치권이 부끄러운 역사만 만들어내고 있는 탓이다.

최근엔 정권 보위용으로 언론에 재갈 물리려는 언론중재법을 밀어붙이던 한 여당 의원이 여·야 간의 합의를 요청한 국회의장을 향해 불만을 터뜨리며 욕중지존(辱中至尊)으로 내뱉은 'GSGG'도 신조어가 되었다. 자칫 이러다간 시중에 흔히 나도는 '개판(gaepan)'이라는 비속어도 세계어 열전에 오르지 않을까, 두려움이 앞선다. 한글날에 되새겨 본 부끄러운 우리말, 우리글이다. 이미애 계명대학교 외래교수·미술학 박사 (영남일보 2021.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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