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ytime, anywhere, we are a family!

커뮤니티

동문동정

[일가를 이루다] 대구예술대 백진우(관현악85) 교수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2,689회 작성일 08-09-19 00:00

본문

[일가를 이루다] 대구예술대 백진우(관현악85) 교수

 

20080814_164026000.jpg

오는 22~24일 대구 수성아트피아 대공연장과 야외무대 등지에서 열리는 2008 대구국제재즈축제. 국내는 물론 해외 유명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하는 재즈축제가 대구에서 처음 열리는 데엔 한 사람의 재즈에 대한 열정과 인적 네트워크가 결정적인 토대가 됐다.

재즈축제의 산파역을 맡고 있는 백진우(43) 대구예술대 교수. 재즈축제의 예술총감독인 그는 축제에 직접 출연하는 것은 물론 제리 시코, 유진박, 진보라 등 개인적으로 친분을 맺은 국내·외 재즈 뮤지션들을 한 무대에 서도록 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지난 10여년 사이 대구에도 재즈를 즐기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그만큼 재즈와 같은 실용음악에 대한 문화적 욕구가 커졌다는 얘기죠. 이번 재즈축제에는 실력있는 뮤지션들이 많이 출연, 재즈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나아가 대구로서는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확보, 컬러풀 대구라는 슬로건에 걸맞은 문화도시로 도약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겠지요.

불혹의 나이를 갓 넘겼지만 백 교수와 재즈와의인연’은 20여년을 훌쩍 넘는다. 경산 압량 출신인 백 교수는 10대 초반인 중학생 때부터 음악에 빠져들었다. 중학교 무렵 브라스밴드에 들어가 드럼을 쳤어요. 부모님께서 음악하는 것을 말리지 않으셨고 악기를 사주며 격려하셨어요. 그 덕분에 오늘의 제가 있는 셈이지요. 고교시절에는 막내들이란 그룹을 만들어 레드 제플린 딥 퍼플 등의 록 음악을 연주했다. 실제로도 막내로만 구성된 이 그룹에서 백 교수는 드럼과 리드기타를 연주하며 음악 실력을 키워나갔다. 

고교를 졸업하고 백 교수가 진학한 곳은 계명대 음악대학 관현악과(85학번). 실용음악을 배울 수 있는 대학을 가고 싶었지만 그 무렵에는 아예 그런 학과가 없었어요. 요즘에는 실용음악과를 둔 대학이 많지만 그 때만 해도 실용음악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던 시절이어서 사정이 달랐지요. 대학에서 클래식을 배우게 된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는 게 백 교수의 회고다. 클래식에 대한 공부가 그의 음악 인생에 튼튼한 자양분이 됐다는 것. 

재즈와 본격적으로 만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음악다방에서 스파이로 자이라의 음악을 듣고 재즈에 심취하게 됐다. 스파이로 자이라는 1975년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팝 재즈 그룹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이 그룹이 연주하는 것을 듣고 재즈의 맛과 멋을 알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타악기인 마림바와 비브라폰의 매력도 실감하게 됐지요. 대학에서도 사계 카운트다운 등 그룹을 결성, 무대에도 자주 섰다. 토토 러시 등의 음악을 연주했고, 고인이 된 가수 김현식이 대구를 찾을 때엔 같이 무대에 서기도 했다. 당시 같이 활동하던 오규철씨는 가수 조용필의 전속 엔지니어로 활동하고 있다는 게 백 교수의 귀띔. 

대학 졸업 후엔 MBC 팝스 오케스트라 단원이 됐다. 제가 MBC 예술단 1기이지요. 당시에는 지방에서 서울의 MBC 팝스 오케스트라 단원이 된다는 것은 정말 힘이 들었어요. 악으로 깡으로 단원이 됐다는 표현이 딱 걸맞습니다. 입단 후 백 교수는 라틴 퍼커션, 팀파니 등을 연주했고 유명 가수의 세션맨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클래식을 전공, 탄탄한 이론을 갖춘데다 중학교 때부터 갈고 닦은 연주 실력으로 두루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백 교수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음악을 더 배우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제가 서울에 간 이유는 실용음악을 더 배우고 싶어서였어요. 하지만 당시 서울에도 실용음악을 배울만한 곳이 없더군요. 그래서 유학을 결심했지요. DCI스쿨, 버클리음악원 등을 거친 후 백 교수는 뉴 잉글랜드 컨서버토리 음악대학원을 졸업했다. 

5년이 넘는 유학기간 동안 공부와 연주, 일을 번갈아하며 땀을 흘렸다. 유학시절 블루 노트란 클럽에서 스파이로 자이라가 직접 연주하는 모습을 봤을 때의 흥분과 설렘을 지금도 백 교수는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편곡으로 미국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롱 스트레이스와 트럼펫 연주 및 편곡, 작곡 등으로 유명한 제리 시코에게서 음악을 배웠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백 교수는 서울 대신 고향인 대구를 택했다. 99년 대구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 교수로 부임, 제자들을 양성하는 한편 애플재즈오케스트라를 결성, 본격적으로 연주 활동에 뛰어든 것. 지난 10년 동안 배출한 제자만 100명을 넘고, 애플재즈오케스트라의 공연 횟수는 무려 50여회에 이르렀다. 비브라폰·플루트 등 다른 재즈팀에서는 보기 힘든 악기로 편성된 20여명이 넘는 빅 밴드인 애플재즈오케스트라는 지역에서 재즈의 저변을 넓히는 데 공헌했다. 어려운 이들을 위한 자선공연에도 앞장서고 있다.  

한마디로 컬러풀하다는 게 저희 오케스트라의 매력이라고 자부하지요. 애플이란 이름도 대구를 상징한다는 뜻에서 붙였습니다. 재즈의 매력은 즉흥성에 있지요. 작곡자는 작품이란 모티브만 제공하고 연주자는 자신의 인생과 생각 등을 거기에 버무려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것이지요. 필 소 굿 칠드런 오브 산체스 데킬라 캐러밴 세인트 토머스 등의 곡들을 즐겨 연주하고 있다. 또 백 교수는 서양에서 온 재즈를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한 차원에서 대가야 태양의 나라란 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연주시간이 10분에 이르는 이 곡은 국악기인 가야금과 드럼, 베이스기타, 키보드 등이 한 데 어우러지는 퓨전 재즈. 20여년 동안 타악기를 연주하느라 오른손 중지에 우뚝하게 굳은 살이 솟은 백 교수는 인재 양성, 연주활동 외에 미국·캐나다 등의 연주자가 참여하는 자신의 재즈 음반을 발매할 계획이다.

영화나 드라마, CF 등에 재즈가 자주 나올 정도로 재즈는 이제 친숙한 존재가 됐어요.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고 귀에 익었던 노래를 하나하나 들으면 누구나 재즈를 즐길 수 있지요. 대구에서 열리는 이번 국제재즈축제에 참가, 현장에서 생생한 연주를 듣는 것도 재즈와 첫 인연을 맺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매일신문사

 
- 2008년 08월 14일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